카이로스시간사고법 퀀텀점프란 무엇인가?
인생을 계단이라 생각하자.
사람은 한 계단씩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한 계단이 아니라 한 번에 7계단을 올라갈 때가 있다.
나는 이것을 퀀텀점프라고 표현했다.
원래 퀀텀점프 용어의 뜻은 물리학 용어다.
양자 세계에서 어떤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갈 때 계단의 차이만큼 뛰어오르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조금씩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한 번에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고 퀀텀점프했다고 표현할 수 있다.
퀀텀점프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존경하는 류태영 박사의 탈무드 강의에서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사람이 발전하는 이유는 자연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악천후 기후에서 사는 사람은 발전한다. 반면, 풍족한 곳에 사는 사람은 발전하지 못한다.
왜냐면 시련이 없기 때문이다.
시련을 이기기 위해서 사람이 노력하는 가운데 발전하는 것이다.
일본이 지진에 강한 건축 기술이 발전한 것과 같다.
먹을 게 풍부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살기 좋은 따듯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디다고 한다.
사람이 발전하려면 시련은 필수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시련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자연의 시련, 재해
자연의 시련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극한의 추위 속에 사는 사람은 추위를 이겨내야 한다.
살아야 하니까.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정글에서 사는 사람은 맹수에게 죽지 않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자연의 시련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지진이 빈번하게 있는 일본은 지진에 강한 건축 기술을 갖고 있다.
미국은 허리케인으로 많은 피해를 본다.
그리고 허리케인에 대비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전쟁이 날 때 인간의 기술이 발전한다고 한다.
더 살상력이 강한 무기를 만들게 되고, 인간을 상대로 생체 실험도 하는데 이때 얻는 실험 결과는 생화학 무기를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우리 나라는 4계절이 뚜렷한 나라다.
장마철 홍수 피해도 있고 너무 뜨거운 날씨로 가뭄도 견뎌야 한다.
겨울에는 한파를 이겨내야 한다.
이런 날씨를 이겨내며 우리나라도 강해진다. 이겨내야 사니까.
사람으로 인한 고난, 인재
직장을 그만둘 때, 사람이 싫어서 그만두는 경우가 있다.
너무 가까이 하기 싫은 사람이 있어서 멀리하는 경우도 있다.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사람.
직장 상사나 부하 직원. 동료. 가스라이팅을 하는 주변 사람. 이간질에 능한 친구.
당신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는가?
내 경우, 직장도 그렇지만 영업 세계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이런 것이 더 잘 보이는 경향이 있다.
사람을 매일 상대하는 일이라서 더 그런 것 같다. 실적이 좋으면 뒤에서 욕한다.
없던 일도 한 것처럼 이간질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나를 만나면 회사 욕, 대표 욕을 하며 직장을 그만두라던 사람도 있었다.
내가 가져가야 할 실적도 자기 것으로 가져갔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잘 포장한다.
그래서 뒤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도 신경을 안 쓴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은 당사자들 뿐이다. 억울해도 방법이 안 보인다.
어차피, 주변 사람들은 말 잘하고 인기 많은 사람 말을 듣기 때문에.
사람 때문에 힘든 상황이라면
당신에게 피해를 주는 쓰레기 같은 인간 때문에 이런 일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축하한다.
그래, 축하한다.
당신은 훨씬 더 큰 그릇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될 테니까.
당신은 훨씬 더 크게 성공할 수 있는 과정을 겪고 있는 거니까.
심신을 단련하고, 하는 일도 더 잘 될 테니까.
나는 항상 이런 마인드로 산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인위적으로.
나는 매사에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매우 많이 하는 전형적인 네거티브 인간이다.
그런 내가 이렇게 마음을 먹는 이유는 어차피 경험한 것이니까.
그러면 남은 건 내 태도와 내 행동이다. 부정적으로 살지, 아니면 긍정적으로 살지 결정해야 한다.
다행히 내가 부정적인 면이 많지만 ‘오기’ 또한 강하다.
그래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해볼 테면 해봐라. 이 거지 같은 새끼야.’
그리고 난 내 할 일을 한다.
딱 한 가지만 당신에게 조언하고 싶다.
자연의 시련이든 인간의 시련이든 있을 때, 기죽지 마라.
기죽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방법은 있다.
기죽을 시간에 차라리 ‘오기’로 바꿔보자.